스스로가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 바라보다
살다 보면 ‘내가 지금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슬며시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는 형태는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의 기준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좋아하던 모습,
학교에서 칭찬받던 행동,
직장·사회가 바라는 역할…
그 모든 조건들로 인해 우리는 어느 순간
‘스스로’가 아니라 **‘만들어진 나’**로 살아가게 됩니다.
대상 때문이라고 믿는 순간, 스스로를 잃는다
얼마 전 한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다가 재밌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고등학생 누나가 동생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기에 제가 부드럽게 주의를 주었더니,
그 누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게 만들었어?”
이 한 문장은 우리 삶의 깊은 문제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내 말과 행동의 원인을 대상에게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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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화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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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날 무시해서 기분 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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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래서 나는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삶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버립니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대상 때문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변화는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온다
사람은 억지로 바꾸려 한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진짜 변화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다음 순간에 찾아옵니다.
“아… 내가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이 인식이 생기면 억지로 바꾸지 않아도
그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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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을 순간 알아차리면
짜증을 멈출 ‘선택’이 생기고, -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은 순간을 알아차리면
그 상처가 생각의 해석이었음을 볼 수 있고, -
어떤 상황이 나를 흔드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 상황에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스스로의 삶이 시작됩니다.
몸·느낌·생각은 갈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몸, 감정, 생각을 각각 따로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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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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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긍정적이어야 좋다고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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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셋은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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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느낌의 에너지가 형태를 가진 상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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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느껴지는 것을 해석하기 위해 잠시 빌려 쓰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불안하면 배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몸과 느낌과 생각은 하나의 생명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살아가기 시작하면 삶이 달라진다
스스로의 삶을 살면 아주 작은 순간들까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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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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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안 돼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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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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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조용해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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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이지만 재밌고, 기쁘고, 편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삶을 살기 시작한 사람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힘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이 힘은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내 안에 있던 것입니다.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듯, 사람도 스스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연을 보면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나무는 자라고, 꽃은 피고, 강은 흐르고, 바람은 불어옵니다.
자연 전체가 ‘스스로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의 전체성을 인간의 삶 속에 표현하는 존재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내 안에서 창조성과 활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힘이 내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결론: 스스로가 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이 달라진다
스스로가 전부라는 말은 철학적인 문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진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삶은 더 이상 대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온전한 삶으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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